제자들 경배와찬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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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스데반의 설교(2)/요셉의 하나님* 본문 : 사도행전 7:9-16*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2. 15.
 

이창모 2024-12-15 16:10:58 172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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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스데반의 설교(1)/아브라함의 하나님* 본문 : 사도행전 7:81-8*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2. 8.
 

이창모 2024-12-08 13:40:39 357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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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하나님의 전사 스데반* 본문 : 사도행전 6:8-15*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2. 1.
 

이창모 2024-12-01 16:02:58 389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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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초대교회, 자신을 이기다!* 본문 : 사도행전 6:1-7*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1. 24.
 

이창모 2024-11-24 16:30:05 488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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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여호와를 즐거이 부를찌어다!* 본문 : 시편 100:1-5*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1. 17.
 

이창모 2024-11-17 16:35:07 431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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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십자가, 언약의 피* 본문 : 마가복음 14:22-24*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1. 10.

이창모 2024-11-10 16:17:09 523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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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초대교회, 세상을 이기다!* 본문 : 사도행전 5:33-42*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1. 3.
 

이창모 2024-11-03 15:58:46 624 더보기
신학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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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능·수동 순종을 통한 칭의는 개혁파 정통 교리”인가? (1)글을 시작하며2021년 11월 16일 [기독교포털뉴스]에 “그리스도의 능·수동 순종을 통한 칭의는 개혁파 정통 교리”라는 제목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제 33회 정암신학강좌서 김병훈·박상봉·이승구 교수 재천명”이라는 소제목으로 ‘하나님의 칭의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김병훈, 박상봉, 이승구 교수의 강의를 정윤석 기자에 의해 요약 보도되었다.물론 필자는 이 강의들을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기독교포털뉴스]에 실린 요약 기사만 가지고 “그리스도의 능·수동 순종을 통한 칭의는 개혁파 정통 교리”라고 주장하는 세 명의 교수들의 문제점들을 차례로 비판하려고 한다.강의를 듣지 않고 정윤석 기자의 요약 기사만 가지고 비판하는 일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세 명의 교수들이 강의에서 인용한 것들은 분명히 “능동순종 교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사용했음이 분명하다는 전제 아래서 비판하려고 한다(정윤석 기자의 기사 전문은 2021.11.16., 기독교포털뉴스의 기사를 참고하라).김병훈 교수의 강의 요약 기사에서“김병훈 교수는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하여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은혜가 주어진다는 교리는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적인 토대”라며 개혁교회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그리스도의 생애의 전체적 순종’(능동순종)과 ‘십자가의 순종’(수동순종)으로 나눠왔다고 밝혔다.” (“그리스도의 능·수동 순종을 통한 칭의는 개혁파 정통 교리”, 2021년 11월 16일, 기독교포털뉴스)김 교수는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하여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은혜가 주어진다는 교리는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적인 토대”라는 말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에 “능동순종”을 포함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이는 독자들을 미혹하려는 궤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김 교수는 “그리스도의 순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백하게 밝히지 않은 모호한 상태에서, 독자들에게 “순종”이라는 단어에 시선을 두게 만들어서 마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하여”에 “능동순종”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독자들을 미혹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하여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은혜가 주어진다는 교리는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적인 토대”라는 말이 독자들을 미혹하지 않는 정언이 되려면, “그리스도의 순종”이 구약의 희생 제사를 통해 수없이 계시했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 즉 죄인들을 죽여 심판하는 대신에 그의 아들을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이시는 심판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려는(마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구원 계획에 대한 전적인 “그리스도의 순종”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해서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순종”이기 때문이며(빌2: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 신학자들의 신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뒤에 보겠지만, 김 교수가 “능동순종 교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칼빈의 기독교강요 2권 16장 5절을 제시했지만, 오히려 칼빈은 여기서 “그리스도의 순종, 즉 십자가에 죽으심의 순종으로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기독교강요 2권 16장 5절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상세히 언급할 것이다).또 김병훈 교수의 “개혁교회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그리스도의 생애의 전체적 순종’(능동순종)과 ‘십자가의 순종’(수동순종)으로 나눠왔다고 밝혔다.”는 언급은 역사적인 사실임에 틀림없지만,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순종의 독특성 때문에 그의 다른 순종들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었지, 십자가의 순종 외에 다른 순종도 구원에 기여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처음부터 개혁교회(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개혁교회는 무늬만 개혁교회가 아니라, 진짜 정통 개혁교회를 의미한다)는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이라는 용어조차 알지 못했다. 아마 그래서인지 김 교수도 괄호를 사용해서 ‘그리스도의 생애의 전체적 순종’을 “능동순종”으로, ‘십자가의 순종’을 “수동순종”으로 표기한 것 같다.그러나 김 교수가 사용한 이런 용어들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웃픈(웃기지만 슬픈 일)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의 자신의 순종에 대하여 “내가 너희들의 의를 위해서 스스로 율법을 능동적으로 순종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디에서도 “능동순종 교리”를 암시하는 말씀조차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원하는 “능동순종”(적극적인 순종)임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예를 들면, 요10: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10:17-18(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마26:53-54(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등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이 적극적인 능동순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물론 성육신 이후의 예수님의 모든 순종이 다 예수님의 자의에 의한 능동적인 순종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십자가의 죽으심의 능동순종은 다른 모든 능동순종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절대적인 “능동순종”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능동순종은 다른 모든 능동순종과는 전혀 다르게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기 위해 대속물이 되시는 유일한 능동순종이기 때문이다(마20: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그러므로 “능동순종 교리”를 옹호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수동순종”(소극적인 순종)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하여 이들이 성경적으로 얼마나 무지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는 “능동순종 교리”를 옹호하는 자들에게 정중히 제안한다. 먼저는 성경을 다시 잘 읽어보라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이라는 용어를 “능동순종(율법에 순종하심)과 구원을 위한 ”절대적인 능동순종“(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바꾸라고 말이다.정윤석 기자에 의하면 김 교수는 “칼뱅의 기독교강요(2권 16장 5절)에서 그리스도의 복종이 전생애에 걸쳐서 이루어졌다고 봤으며,”라고 했다. 강의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김 교수는 칼빈도 기독교강요(2권 16장 5절)에서 “능동순종”을 옹호하는 태도를 취했다는 취지로 강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김 교수가 제시한 칼빈의 기독교강요 2권 16장 5절~7절의 제목으로 제시한 “The effects of the obedience and death of Christ, 5-7”(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의 효과, 5-7)을 보면, 칼빈도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을 구별하여 나눈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김 교수는 이를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을 의미하는 것처럼 제시했겠지만, 그러나 칼빈의 “The effects of the obedience and death of Christ”에는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의 의미는 전혀 없다. 오히려 칼빈은 십자가의 죽으심의 순종과 다른 순종이 주는 효과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둘을 구별했을 뿐이다.칼빈은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기독교강요 2권 16장 5절을 시작할 때, “Christ has redeemed us through his obedience, which he practiced throughout his life”(그리스도는 그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그는 평생 동안 그의 순종을 실행하셨다)라고 말하고 난 뒤에, 곧 이어 본 설명에서 “he accomplished this by the whole course of his obedience.”(그는 그의 순종의 전 과정에 의해 이를 성취하셨다)라는 말로, “그의 순종”이 “십자가의 죽으심”임을 말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칼빈은 뒤이어서 “그가 그의 순종의 전 과정에 의해 성취한 “이를(this)”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 롬5:19(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느니라)을 제시한다. 칼빈은 헬라어에 능했기 때문에 롬5:19에서 바울이 단수로 표기한 ”한 사람의 순종“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따라서 칼빈이 “he accomplished this by the whole course of his obedience.”(그는 그의 순종의 전 과정에 의해 이를 성취했다)의 근거 본문으로 제시한 롬5:19을 염두에 두면, 예수님이 자신의 순종의 전 과정을 통해 성취하신 “이를(this)”이 “십자가의 죽으심의 순종”이었음이 너무나도 명백하다.그럼에도 “능동순종 교리”를 주장하는 자들은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롬5:19)에서의 예수님의 순종을,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신 ‘능동순종’과 십자가에서 죽으신 ‘수동순종’ 모두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에 “십자가” 외에 “능동순종”이 있다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들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능동순종’ 교리를 롬5:19에 억지로 끼워 맞춘 터무니없는 해석이며 주장이다.롬5:19에서 바울은 “διὰ τῆς παρακοῆς”(디아 테스 파라코에스/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에서 “παρακοῆς”(파라코에스/순종하지 아니함)를 단수로 표기한다. 이는 많은 사람의 죄인 됨이 아담의 단 하나의 불순종,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행위임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동일하게 바울은 “διὰ τῆς ὑπακοῆς”(디아 테스 휘파코에스/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에서 “ὑπακοῆς”(휘파코에스/순종하심)도 단수로 표기한다.이는 많은 사람의 의인됨이 그리스도의 단 하나의 순종, 즉 십자가의 죽으심의 순종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바울은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롬5:19)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롬5:6-10에서 길게 진술하였다. 롬5:6-10(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을 보라. 바울이 롬5:19에서 말하는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순종이 너무나도 명백하지 않는가!!바울은 빌2: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에서도 죄인들의 구원이 예수님의 단 하나의 순종, 즉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았음을 더욱 분명히, 아예 노골적으로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칼빈도 이를 몰랐을 리 없었기 때문에, 조금 뒤에 가서, “however, the more certainly to define the mode of salvation, ascribes it peculiarly and specially to the death of Christ.”(그러나 구원의 방법을 더 정확하게 정의하기 위하여, 성경은 그것을 유일하게, 그리고 특별하게 그리스도의 죽음에 돌린다)는 진술로 롬5:19의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가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순종으로”임을 더욱 분명히 한다.칼빈은 이를 성경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뒤이어 마20: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롬4: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요1: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롬3:24-25(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5:9-16(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고후5: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을 제시한다.이렇게 칼빈은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구약의 희생 제사를 통해 수없이 계시되었던 것처럼, 바울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한 롬5:19의 메시지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자신을 드리는 희생 제사의 순종을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라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김 교수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2권 16장의 5절을 “능동순종 교리”를 옹호하는 것처럼 변조시키려고 하는가?앞으로는 “능동순종 교리”의 옹호자들은 적어도 위대한 개혁 신학자인 칼빈의 말을 이용해서 “능동순종 교리”를 옹호하려는 시도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칼빈의 개혁 신학에는 그 어디에도 비성경적인 “능동순종”의 개념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능동순종” 개념은 16세기 말이나 17세기 초에 일부 신학자들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처럼 보이며, 이때 생겨난 “능동순종” 개념이 웨신서 8장 5절과 11장 3절에도 영향을 준 것처럼 보인다(물론 웨신서 8장 5절과 11장 3절의 원문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아닐 개연성도 얼마든지 있다).김 교수가 주장하는 “능동순종 교리”는 1세기 갈라디아 교회의 거짓교사들에 의해 조작된 “다른 복음”의 21세기 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능동순종 교리”는 1세기 갈라디아 교회의 거짓교사들이 율법 순종을 내세워 십자가를 공격한 “다른 복음”과 너무나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갈라디아 교회의 거짓교사들의 “다른 복음”은 십자가에 인간의 율법 순종을 더함으로써 십자가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였다면, 지금의 “능동순종 교리”는 십자가에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을 더함으로써 십자가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라는 점이다.이런 이유로 십자가에 인간의 율법 순종을 더한 갈라디아 교회의 거짓교사들의 “다른 복음”보다는, 십자가에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을 더한 지금의 “능동순종 교리”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의 율법 순종보다는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이 훨씬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능동순종 교리”가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인다할지라도, 거짓교사들의 다른 복음을 저주한 것처럼(갈1:8/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능동순종 교리”도 동일하게 저주할 것이다. 왜냐하면 “능동순종 교리”는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을 십자가에 더하는 방식으로 십자가를 약화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구원을 무효화시켜 버리는 무서운 교리이기 때문이다.김 교수의 “김 교수는 결과적으로 1647년 채택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그리스도의 순종을 능·수동으로 구분하는 입장이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신앙고백서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순종, 그리고 그분 자신을 드린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성부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키셨다”(8장 5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순종, 그리고 죽음으로, 이렇게 의롭다하심을 받는 모든 사람의 빚을 완전히 청산하셨으며”(11장 3절)가 대표적이다.“(“그리스도의 능·수동 순종을 통한 칭의는 개혁파 정통 교리”, 2021년 11월 16일, 기독교포털뉴스)는 다음에 쓸 “그리스도의 능·수동 순종을 통한 칭의는 개혁파 정통 교리”인가?<2>에서 웨민서 8장 5절과 11장 3절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한다.글을 마치며아래에 소개하는 일련의 설교는 “능동순종”에 심취한 청교도주의자인 J 목사의 설교 중 일부이다. 그가 “능동순종”을 예수님의 적극적인 순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십자가를 얼마나 약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보라(J 목사의 기가 막힌 설교의 실체를 확인하려면, <바른믿음>의 2021.12.20. “청교도 신학-웨신서의 행위언약 붙들면 반드시 십자가를 비켜갑니다”를 보라). 이것이 “능동순종 교리”, 청교도주의가 빚어낸 대 참사의 현장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참사의 희생자가 되었을지는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야 하는데, 그리스도의 의에는 적극적인 의와 소극적인 의가 있어요. 소극적인 의는, 이건 정확하게 말하면 의미상 두 개를 나누는 것입니다. 소득적인 의는 예수님의 소극적으로 하나님의 벌을 받아들이는 것은 소극적인 의라고 그래요. 소극적인 의는 여러분들이 십자가에서 찢겨서 죽어야 하는데, 그 죄를 우리 주님이 감당하신 거예요. 우리 주님이 적극적으로 찾아가면서 십자가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 로마 병정이 붙들었고, 유대인들이 고소했고 ... 이것이 주님이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당하신 것이 아니므로 이것을 그리스도의 소극적인 의라고 그럽니다. 이 소극적인 의는 여러분들이 예수님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고 여러분들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들인데, 그것을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감당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의를 우리 주님이 획득하셨다! 그 의는 소극적인 의이다.그러면 적극적인 의는 뭐냐? 우리 주님이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적극적으로 율법을 지켜 나가시는 것을 적극적인 의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 주님께서는 소극적인 의와 적극적인 의, 두 개를 딱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개를 여러분들이 함께 받아야 합니다. 소극적인 의는 여러분들이 죄용서 받고 지옥에 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을 대신 치러주신 것을 받은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옥에 가지 않아요. 문제는 뭐냐 하면, 여러분들은 지옥에 가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설 수가 없어요. 왜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지만, 단지 예수님께서 그것(십자가)을 대신 저주어서 지옥에 가지 않을 뿐이지, 우리가 하나님과 의의 관계를 가질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과 의의 관계를 가지려면, 우리 주님이 적극적으로 율법을 성취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으신 의의 옷을 입혀 주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적극적인 의는 여러분들의 옷을 만들어 준 것이고, 할렐루야! 소극적인 의는 여러분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막아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탕자를 보겠습니다. 탕자의 마음속에 어느 순간에 먹을 것이 더 이상 없으니까 아버지 집에 가면 먹을 것이 풍성하고 ... 이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바른믿음, 정이철, “청교도 신학-웨신서의 행위언약 붙들면 반드시 십자가를 비켜갑니다”, 2021.12.20.)너무나 기가 막혀서 위 설교에 대한 코멘트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설교를 듣는 신자들이 모르고 아멘하면 큰일 날 일이니까 “능동순종”이라고 하는 적극적인 순종의 강조가 얼마나 위험한 다른 복음인가를 성경 말씀으로 지적하는 일은 해야만 하겠다.J 목사는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지만, 단지 예수님께서 그것(십자가)을 대신 저주어서 지옥에 가지 않을 뿐이지, 우리가 하나님과 의의 관계를 가질 수가 없는 거예요.”라고 말함으로써, 십자가만으로는 지옥은 면제되어도, 하나님과 의의 관계는 가질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성경 어디에도 없다.그러나 오히려 성경은 오직 십자가만으로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는 것은 예수님의 율법 순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밖에 없다고 성경이 선언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과의 화목과 교제는 십자가로 충분하다는 성경 말씀은 성경 도처에 널리고 널려있다.그것들 중 몇 개만을 소개하면, 롬5: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엡2:12-13(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2: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골1: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등이다.

교회 사진첩

22년 성탄 축하 공연 모습

관리자S 2022-12-25
4-6월 추천 도서

​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Ⅱ《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Ⅱ》
하나님론 -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사역하나님의 존재방식인 삼위일체 교리와 하나님의 성육신의 교리를 다룬 책이다. 근세신학은 삼위일체 교리를 완전히 제거하였으면, 로마교회와 종교개역교회는 대부분 배도를 완료했다. 서철원 교수는 교회가 구원종교로 남아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이루기 위해서는 삼위일체 교리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교의신학 시리즈는 복음선포를 위한 설교 준비 교과서로 작성되었다. 또한 평신도들도 교의신학을 이해하기 쉽도록 저술하여 성경전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전개하였다. 또 신학적인 난제들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 계시에서 유래한다. 삼위일체가 한 하나님이신 것은 실체가 하나이고 동일하고 분할불가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의 사역의 방식은 아버지는 아들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일하신다. 삼위일체의 신비인 출생과 출래의 비밀을 성경대로 푼다. - 책에서 -
목차머리말제1장 서 론1.1. 정의
1.2. 하나님의 존재
1.2.1.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무한한 영이시다
1.2.2.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1.2.3. 하나님은 구속주이시다
1.2.4.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1.3. 하나님의 속성
1.4. 삼위일체 하나님1.5. 창조경륜
1.6. 만물 창조
1.6.1. 순간 완결된 창조
1.6.2. 전능한 창조주
1.6.3. 창조의 목표
1.6.4. 창조의 부정
1.7. 섭리
제2장 하나님의 존재제1절 하나님의 존재2.1.1. 스스로 계시는 무한한 영
2.1.2. 창조주 하나님2.1.3. 구속주 하나님2.1.4. 삼위일체 하나님제2절 하나님의 존재 증명 불필요2.2.1.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존재자이시다2.2.2.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다
2.2.3. 하나님은 자기의 존재를 계시하셨다
제3장 하나님의 속성제1절 전유적 속성3.1.1. 자존성3.1.2. 단순성과 유일성3.1.3. 무한성
3.1.4. 불변성제2절 유비적 속성3.2.1. 하나님의 생명
3.2.2.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
3.2.2.1. 하나님의 미리 아심3.2.2.2. 하나님의 지혜
3.2.3. 하나님의 의지
3.2.4. 하나님의 사랑
3.2.5. 하나님의 은혜
3.2.5.1.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
3.2.5.2.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3.2.5.3. 하나님의 인자하심
3.2.6. 하나님의 의
3.2.7. 하나님의 주권
3.2.7.1. 절대적 권세
3.2.7.2. 섭리적 권세
3.2.8. 하나님의 거룩
제4장 삼위일체 하나님제1절 삼위일체 교리제2절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왔음제3절 삼위일체는 유일한 실체가 세 위격으로 계심임제4절 위격들의 관계와 구별
4.4.1. 관계에 의한 위격들의 구별
4.4.2. 교부들의 이해
4.4.2.1. 사도적 교부인 이그나치오스
4.4.2.2. 변증가 유스티노스
4.4.2.3. 안디옥의 떼오필로스
4.4.2.4. 에레나이오스
4.4.2.5. 텔툴리아누스4.4.2.6.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4.4.2.7. 오리게네스
4.4.2.8. 아다나시오스
4.4.2.9. 바실레오스
4.4.2.10.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
4.4.2.11. 닛사의 그레고리오스제5절 삼위일체의 사역의 방식
4.5.1. 아다나시오스의 가르침
4.5.2. 힙폴리토스의 견해
4.5.3.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제시
4.5.4. 오리게네스의 강조제6절 각 위격의 사역의 방식
4.6.1. 아버지는 유래 없이 스스로 일하심
4.6.2.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일하심
4.6.3.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일하심
4.6.3.1. 에레나이오스
4.6.3.2. 바실레오스
4.6.3.3.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4.6.3.4. 암브로시우스
4.6.3.5. 루피누스제7절 한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계심의 방식
4.7.1. 하나님은 스스로 계심
4.7.2. 아들의 출생
4.7.2.1. 출생: 아버지에게서 아들의 위격이 나오심
4.7.2.2. 교부들의 이해
4.7.2.2.1. 유스티노스
4.7.2.2.2. 타치아노스
4.7.2.2.3. 아떼나고라스
4.7.2.2.4. 에레나이오스
4.7.2.2.5. 텔툴리아누스
4.7.2.2.6. 힙폴리토스
4.7.2.2.7. 노바치안
4.7.2.2.8.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4.7.2.2.9. 오리게네스
4.7.2.2.10.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드로스
4.7.2.2.11. 아다나시오스
4.7.2.2.12. 힐라리우스
4.7.2.2.13. 바실레오스
4.7.2.2.14.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
4.7.2.2.15. 닛사의 그레고리오스제8절 출생의 성경적 해명
4.8.1. 정의: 아들의 출생=하나님의 자기 객관화 자기 객관화가한 인격을 이룸제9절 성령의 출래에 관한 교부들의 가르침
4.9.1. 출래: 성령의 위격적 존재방식
4.9.2. 교부들의 이해4.9.2.1. 텔툴리아누스
4.9.2.2. 오리게네스
4.9.2.3. 아다나시오스
4.9.2.4. 힐라리우스
4.9.2.5. 바실레오스
4.9.2.6.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
4.9.2.7.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4.9.2.8.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4.9.2.9. 암브로시우스
4.9.2.10. 루피누스
4.9.2.11. 아우구스티누스
4.9.2.12. 아다나시오스 신경
4.9.2.13. 다메섹의 요한네스
4.9.3. 성령의 출래: 하나님의 호흡의 방식
4.9.4. 단일 출래를 교리로, 그러나 이중 출래도 주장제10절 출래의 합당한 해명: 출래=무한한 신성의 현시
4.10.1. 정의: 성령의 출래: 하나님의 충만의 현시 무한한 신성의 현시가 한 인격을 이룸
4.10.2. 무한한 충만은 편재하심임제11절 보혜사 성령
4.11.1. 성령=보혜사
4.11.2. 보혜사 성령의 직임
4.11.3. 보혜사 성령은 믿는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하심
4.11.4. 보혜사는 사람들 안에 믿음을 일으키심
4.11.5. 보혜사 성령의 내주
4.11.6. 보혜사는 구원진리를 가르치심
4.11.7. 보혜사는 믿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지키심
4.11.8. 보혜사는 거룩하게 하심제12절 원보혜사와 다른 보혜사
4.12.1. 원보혜사가 성령을 다른 보혜사로 지목
4.12.2. 그리스도는 구속사역에 근거하여 성령을 청구
4.12.3. 보혜사 성령을 보내심
4.12.4. 보혜사 성령의 본질제13절 위격의 문제
4.13.1. 실체와 위격의 관계
4.13.2. 페리코레시스
4.13.3. 분리 불가한 교제
4.13.4. 신격과 위격들이 분열되지 않음제14절 페리코레시스에 대한 현대적 이해
제5장 삼위 하나님의 사역제1절 창조
5.1.1. 창조주 아버지: 창조 작정
5.1.1.1. 사도신경과 신앙의 규범의 가르침
5.1.1.2. 로마의 클레멘트
5.1.1.3. 이그나치오스
5.1.1.4. 헤르마스
5.1.1.5. 유스티노스
5.1.1.6. 타치아노스
5.1.1.7. 안디옥의 떼오필로스
5.1.1.8. 아떼나고라스
5.1.1.9. 에레나이오스
5.1.1.10. 텔툴리아누스
5.1.1.11. 힙폴리토스
5.1.1.12. 노바치안
5.1.1.13.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5.1.1.14. 오리게네스
5.1.1.15. 아다나시오스
5.1.1.16.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5.1.1.17. 아우구스티누스
5.1.2. 아들 하나님: 직접적 창조주
5.1.2.1. 이그나치오스
5.1.2.2. 유스티노스
5.1.2.3. 타치아노스
5.1.2.4. 떼오필로스
5.1.2.5. 아떼나고라스
5.1.2.6. 에레나이오스
5.1.2.7. 텔툴리아누스
5.1.2.8. 힙폴리토스
5.1.2.9. 노바치안
5.1.2.10.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5.1.2.11. 오리게네스
5.1.2.12. 아다나시오스5.1.2.13. 닛사의 그레고리오스5.1.2.14. 아우구스티누스5.1.3. 성령 하나님: 창조의 완성5.1.3.1. 아떼나고라스5.1.3.2. 에레나이오스5.1.3.3.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5.1.3.4. 아다나시오스5.1.3.5. 바실레오스5.1.3.6. 닛사의 그레고리오스5.1.3.7. 암브로시우스
5.1.3.8. 루피누스제2절 구속과 구속주
5.2.1. 하나님 아버지: 구원 작정으로 구주로 고백됨
5.2.2. 아들 하나님: 구속사역 수행으로 실제 구속주이심
5.2.3. 교부들의 증거
5.2.3.1. 로마의 클레멘트
5.2.3.2. 제 2 클레멘트
5.2.3.3. 바나바스
5.2.3.4. 이그나치오스5.2.3.5. 유스티노스
5.2.3.6. 에레나이오스
5.2.3.7. 힙폴리토스
5.2.3.8. 오리게네스
5.2.3.9.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5.2.3.10. 메또디오스
5.2.3.11. 니카야 신경5.2.3.12. 아다나시오스
5.2.3.13.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5.2.3.14. 닛사의 그레고리오스5.2.3.15. 칼케돈 신경5.2.4. 성령 하나님: 그리스도의 구원적용으로 구원완성
5.2.5. 교부들의 이해5.2.5.1. 이그나치오스
5.2.5.2. 에레나이오스
5.2.5.3. 노바치안
5.2.5.4.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5.2.5.5. 오리게네스
5.2.5.6. 아다나시오스
5.2.5.7. 예루살렘의 퀴릴로스
5.2.5.8. 바실레오스
5.2.5.9. 빅토리누스제6장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는 근세신학제1절 슐라이어마허6.1.1. 칸트의 인식론 도식으로 신학을 완전히 바꿈6.1.2. 신=순전한 의존감정을 발음하는 것6.1.3. 삼위일체 교리의 새로운 논의6.1.3.1. 삼위일체는 전적 의존감정이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 있는 것
6.1.3.2. 슐라이어마허는 의존감정을 영원화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만들었다고 주장
6.1.3.3. 슐라이어마허의 전통적 삼위일체 교리 비판
6.1.3.4. 삼위일체 교리는 이방 다신교가 그리스도교에 들어와서 형성된 것이라고 함
6.1.3.5. 삼위일체 교리를 변형해야 한다고 함6.1.4.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는가?6.1.5. 성령=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공통정신제2절 칼 발트
6.2.1. 하나님은 유일한 신적 존재
6.2.2. 세 위격은 세 존재방식6.2.3. 삼위일체=계시의 세 계기로서 하나님의 존재방식6.2.4. 하나님의 존재: 행동과 사건
6.2.5. 하나님의 존재: 행동과 사역들 안에
6.2.6. 하나님의 존재: 계시의 행동6.2.7. 하나님의 신성: 행동하는 사건6.2.8. 하나님의 존재=생명, 자유로운 행동, 자유로운 사건6.2.9. 하나님의 존재=자기의 결정
6.2.10. 행동과 결정 위에 신의 본질 내로 소급할 계기 없음6.2.11. 교제를 마련하심=그의 행동, 신의 본질임
6.2.12. 하나님만이 인격: 인간 예수만이 인격6.2.13. 유일한 인격적 하나님
6.2.14. 하나님의 존재의 자리: 예수 그리스도 안6.2.15. 하나님=예수 그리스도
6.2.16. 예수 그리스도=유일한 하나님
6.2.17. 선포: 예수 그리스도만=현존하시는 하나님
6.2.18.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철저히 회개한 죄인
6.2.19. 결론: 인간 예수 그리스도=유일한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이 없음제3절 폴 틸리히6.3.1. 신은 존재자체6.3.2. 신은 사람의 궁극적 관심사를 표현하는 것6.3.3. 신은 존재자체이고 존재의 기반이다
6.3.4. 존재자체가 삼위일체적 원리이다6.3.5. 틸리히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 논의로 창조주 하나님을 없애고 존재자체를 신으로 만들었다제4절 칼 라아너
6.4.1. 하이데거의 철학으로 신학을 완전 변화시킴
6.4.2. 신=존재자체, 거룩한 신비
6.4.3. 삼위일체=존재의 통보 도식제5절 위르겐 몰트만
6.5.1. 삼위일체: 십자가상의 고통의 사건
6.5.2. 삼위일체론의 근거는 신론을 그리스도인의 자기의식으로 바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함
6.5.3. 삼위일체를 십자가상의 고통의 교류의 사건으로 전개
6.5.4. 사건 안에서 기도함
6.5.5. 사랑의 사건
6.5.6. 삼위일체: 하늘의 원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나온 종말론적 사건
제7장 하나님의 창조경륜제1절 경륜과 작정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
7.1.1. 작정에 대한 전통적인 세 구분
7.1.2. 일반적 작정과 특별 작정제2절 경륜과 작정에 대한 바른 성찰
7.2.1. 작정=하실 일을 미리 정하심제3절 작정과 경륜에 대한 성경적 근거
7.3.1. 하나님의 뜻을 작정으로 표현한 성경본문들
7.3.2. 경륜을 직접 표현한 성경본문
7.3.3. 예정으로 작정을 표현한 성경본문들
7.3.4. 작정을 직접 표현한 성경본문
7.3.5. 경영과 도모, 모략으로 작정을 표현한 성경본문들
7.3.6. 택하심으로 작정을 표현한 성경본문들
7.3.7. 인봉, 인봉한 책, 책으로 하나님의 작정을 표현한 성경본문들
7.3.8.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의 작정을 표현한 성경본문들제4절 창조경륜
7.4.1. 창조경륜 정의
7.4.2. 창조경륜을 집행하심: 선악과계명으로 언약을 맺으심
7.4.3. 반역이 일어남
7.4.4. 반역한 백성을 구원하기로 정하심
7.4.5. 창조경륜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
7.4.5.1. 창조경륜의 확실한 성취
7.4.5.2.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백성으로 삼으심은 창조경륜의 성취를 위한 준비
7.4.5.3. 시내산 언약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심은 창조경륜의 성취를 위한 준비임
7.4.5.4. 새 언약의 목표가 창조경륜의 성취를 위한 것임을 밝힘임
7.4.5.5. 그리스도의 피로 사람들을 구속함은 창조경륜의 성취임제5절 하나님의 작정들
7.5.1. 창조 작정
7.5.1.1. 물리적 세계를 언약백성의 거소로 창조하기로 하심
7.5.1.2. 영적 세계를 창조하시어 하나님과 언약백성을 섬기도록 하심
7.5.1.3. 백성으로 창조를 탐구하여 영원히 창조주를 영화롭게 하도록 작정하심
7.5.1.4. 영원세계에서도 창조탐구
7.5.2. 역사진행 작정7.5.3. 구원 작정
7.5.3.1. 하나님이 대신 죗값을 갚으심이 예정됨
7.5.4. 선택과 유기의 작정
7.5.4.1. 죄 때문에 창조경륜을 이루심에 선택과 유기의 작정을 세우심
7.5.4.2.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이 이루어짐
7.5.4.3. 예정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의 작정임
7.5.4.4. 예정은 삼위의 사역
7.5.4.5. 선택과 유기의 작정은 확고하고 불변
7.5.4.6. 택자들의 수
7.5.4.7. 유기 작정제6절 선택 교리의 논의
7.6.1.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
7.6.1.1. 작정의 불변성
7.6.1.2. 사람의 범죄는 신적 허락에 의해서
7.6.1.3.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도 하나님의 뜻 없이 되지 않음
7.6.1.4. 모든 인류의 구원은 예정된 자들만 구원되는 것을 뜻함
7.6.1.5. 하나님은 허락으로 이루시거나 실제로 자신이 이루심
7.6.1.6.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을 다 이루심
7.6.1.7. 예정은 은혜로 이루어짐
7.6.1.8. 지성적 존재의 타락을 예지하셔도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빼앗지 않으심
7.6.1.9.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룸
7.6.2.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개
7.6.2.1. 예정은 지성적 존재들을 영생으로 배정하는 것
7.6.2.2. 예정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집행함임
7.6.2.3. 예정에는 선택과 유기가 있음
7.6.2.4. 예정: 영생으로 배정 유기: 영생에서 탈락 허용
7.6.2.5. 예정: 영광의 원인 유기: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음임
7.6.2.6. 유기는 자유의지 박탈 아님
7.6.2.7. 조건 없는 선택
7.6.2.8. 예정은 공로와 상관없음
7.6.2.9. 예정은 확실함
7.6.2.10. 예정된 자들의 수: 확정적
7.6.3. 칼빈의 가르침
7.6.3.1. 자유의지로 공로 이룰 수 없음
7.6.3.2. 죄로 자유 박탈됨: 의 추구 못함
7.6.3.2.1. 자유의지 주창자: 이성의 지도를 받아 의지가 선행을 할 수 있다고 주장
7.6.3.2.2. 교부들도 의지의 자유 인정, 선행 가능성 주장
7.6.3.3. 초자연적 은사들 제거: 자연적 은사들 부패
7.6.3.4. 선의지와 선행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7.6.3.5. 믿음과 선행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7.6.3.6. 본래의 자유의지는 남아 있지 않음
7.6.4. 칼빈의 선택 교리
7.6.4.1. 예정: 구원과 멸망으로 작정임
7.6.4.2. 예정 교리: 성경적 진리
7.6.4.3. 예정 교리 부정 불가
7.6.4.4. 민족적 선택과 개인의 선택의 차이
7.6.4.5. 선택과 공로 예지는 무관함
7.6.4.6. 문제점: 죄와 무관하게 예정 교리 전개
7.6.5. 종교개혁 신경들의 예정 교리 수납
7.6.5.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6.5.2. 영국교회의 39개조
7.6.5.3.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서
7.6.5.4. 제 1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7.6.5.5. 프랑스 신앙고백서7.6.5.6. 네덜란드 신앙고백서
7.6.5.7. 돌트 신경
7.6.5.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제7절 하나님의 합리적, 인격적 존재들을 다루시는 방식을 예정으로 오해함
제8장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심제1절 단번에 완결된 창조
8.1.1. 순간 완결된 창조
8.1.2. 플라톤의 창조론: 영원한 물질에서 현상으로 조성
8.1.3.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단계 창조론
8.1.4. 단번의 완성된 창조제2절 전능한 창조주
8.2.1. 창조를 작정하신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
8.2.2. 창조계획을 구현하신 창조주: 아들 하나님
8.2.3. 아들 하나님의 창조 중보직에 관한 교부들의 가르침
8.2.3.1. 바나바스
8.2.3.2. 이그나치오스
8.2.3.3. 유스티노스
8.2.3.4. 타치아노스
8.2.3.5. 안디옥의 떼오필로스
8.2.3.6. 아떼나고라스
8.2.3.7. 에레나이오스
8.2.3.8. 힙폴리토스
8.2.3.9. 노바치안
8.2.3.10.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8.2.3.11. 오리게네스
8.2.3.12.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드로스
8.2.3.13. 아다나시오스
8.2.3.14. 예루살렘의 퀴릴로스
8.2.3.15. 암브로시우스
8.2.3.16. 루피누스
8.2.3.17. 아우구스티누스
8.2.4. 창조를 장식하고 완성한 창조주: 성령 하나님
8.2.5. 창조 진행을 마감하시는 창조주: 창조 중보자제3절 창조의 방식
8.3.1. 하나님은 그의 의지의 역사로 창조를 이루심
8.3.2. 하나님은 무에서 만물을 말씀으로만 불러내심
8.3.3. 하나님은 단번에 완결된 사물들을 만드심
8.3.4. 창조의 목표: 창조경륜…
8.3.4.1. 하나님은 그의 손의 일을 누리기를 기뻐하심
8.3.4.2. 창조주를 찬송하는 백성으로 사람을 창조하심
8.3.4.3.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게 하려고 광대무변한 우주를 창조하심제4절 하늘을 창조하심
8.4.1. 하늘을 창조 첫 순간에 다 창조하심
8.4.2. 영원물질에서 만물이 이루어졌다는 가설
8.4.3. 유출에 의한 창조는 불가함
8.4.4. 넓이와 길이의 문제
8.4.5. 하늘의 별자리들을 은하계를 중심으로 배치하심
8.4.6. 우리의 은하계에 태양계를, 그 중심에 지구를 두셨다
8.4.7. 태양계의 배치
8.4.8. 시간을 창조하심
8.4.9. 빛을 창조하심
8.4.10. 별들의 직임제5절 땅을 창조하심
8.5.1. 땅을 특별한 자리로 창조하심
8.5.2. 시간 과정 도입
8.5.3. 궁창을 만드심
8.5.4. 풀과 나무들을 창조하심
8.5.5. 해와 달과 행성들을 지구 둘레에 배정하심
8.5.6. 물과 공기에 사는 생명체들을 창조하심
8.5.7. 땅 위에 사는 짐승들을 창조하심제6절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심
8.6.1. 창조경륜
8.6.2. 하나님의 형상 곧 인격체로 사람을 창조하심
8.6.3. 땅의 티끌로 몸을 창조
8.6.4. 영혼을 도덕적, 지성적 성품을 가진 영적 실체로 창조하심
8.6.5. 백성 삼는 언약을 체결
8.6.6.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심제7절 영적 세계를 창조하심
8.7.1. 천사들을 창조하심: 물리적 세계와 동시에 창조됨
8.7.2. 천사의 존재
8.7.3. 천사들의 지식
8.7.4. 천사들의 직임
8.7.4.1. 천사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창조됨
8.7.4.2. 하나님은 그의 작정과 경륜을 천사들을 통해서 집행하심
8.7.4.3. 천사는 하나님의 계시와 명령을 전달
8.7.4.4. 천사들은 언약백성을 지킴
8.7.5. 천사들의 분류
8.7.5.1. 보좌들, 주관들, 정사들, 권세들
8.7.5.2. 스랍들, 가브리엘, 미가엘제8절 천사들의 범죄
8.8.1. 사탄과 그 무리가 범죄함
8.8.2. 사탄의 범죄의 시기
8.8.3. 사탄의 범죄: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고 반역함
8.8.4. 타락한 천사들의 수를 사람으로 채움의 문제
8.8.4.1. 타락한 천사들의 수를 사람들 중 택한 자들로 채운다는 주장
8.8.4.2. 타락한 천사들의 수를 사람들로 채움
8.8.4.3. 인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심
8.8.5. 천사 창조를 부정하는 근세신학제9절 창조를 부정하는 근세신학
8.9.1. 슐라이어마허
8.9.1.1.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하는 진술은 순전한 의존성을 표현한다는 것임
8.9.1.2. 현상대로 있는 보존을 창조라고 함
8.9.1.3. 보존은 종을 따라 새로운 개물이 나타나는 것임
8.9.1.4. 개별존재들이 새롭게 발생하는 것은 반복적인 신의 활동임
8.9.1.5. 개별사물들이 교대로 나타난 것을 보존 곧 창조로 봄
8.9.1.6. 세계를 창조된 것으로 보는 것은 전적 의존감정의 표현
8.9.1.7. 보존에서 새로운 개물들이 나오는 것이 창조활동
8.9.1.8. 성경의 시작에 창조론을 넣은 것은 지적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함
8.9.1.9. 창조는 경건한 자기의식에 모순된다는 것
8.9.1.10. 창세기의 창조설화는 역사적이 아니라는 것
8.9.1.11. 창조론 논의는 교의학의 업무가 아니라고 함
8.9.2. 칼 발트
8.9.2.1. 창조: 의존성의 관계개념
8.9.2.2. 성경의 창조 문장: 신앙 문장
8.9.2.3. 창조: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말하는 것
8.9.2.4. 창조 기사: 신앙 문장
8.9.2.5. 성경의 창조 역사=비사실적 역사 곧 싸가
8.9.2.6. 창조: 은혜언약의 역사를 위한 공간 마련
8.9.2.7. 영원은 과거, 현재, 미래의 통일인 순간
8.9.2.8. 창조주 하나님도 시간적
8.9.2.9. 창조 역사는 환상에서 나온 것인데도 믿음을 요구한다고 함
8.9.2.10. 창조 사건들을 싸가로 말함
8.9.2.11. 낙원은 실재 자리가 아니고 환상에서 기원하였음
8.9.2.12. 선악의 지식 나무 싸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라는 것
8.9.2.13. 남녀 창조: 원인론적 신화
8.9.2.14. 결론: 자존하신 하나님도 없고 무에서의 창조도 없다
8.9.3. 폴 틸리히
8.9.3.1. 창조: 존재가 존재물로 나타남 곧 계속적인 일
8.9.3.2. 결론: 신은 존재자체이고 창조는 존재가 존재물로 구체화됨임
8.9.4. 칼 라아너
8.9.4.1. 창조: 인과적 사건 아님
8.9.4.2. 창조: 존재 통보로 존재자가 늘 나오는 것을 말함
8.9.4.3. 창조: 세계가 신에게 의존해 있음을 말함
제9장 섭 리제1절 섭리의 정의
9.1.1. 섭리의 두 요소: 보존과 통치제2절 섭리의 작정과 목표
9.2.1. 섭리의 작정
9.2.2. 섭리의 목표는 창조경륜을 성취함임
9.2.3. 섭리주제3절 붙드심
9.3.1. 섭리주는 만물을 그 성질과 법칙대로 보존하심
9.3.1.1. 토마스의 보존 개념: 존재를 흘러들어가게 해서 보존함임
9.3.1.2. 존재를 부어넣음이 아니고 만물을 붙드심이라고 해야 함
9.3.2. 만물이 변형되어 다른 종이 되지 않게 붙드심
9.3.3. 만물에게 생명을 주셔서 붙드심
9.3.4. 창조주는 만물의 종을 보존하심제4절 통치권의 위임과 보존을 위한 사람의 책임
9.4.1. 통치권의 위임은 창조물의 보존의 책임을 지는 것임
9.4.2. 땅을 다스림은 땅의 형질과 형체와 토질을 보존함임
9.4.2.1. 땅의 형체를 변형하여 완전한 파괴를 자행함은 불가함
9.4.2.2. 토질을 완전히 파괴함은 불가함
9.4.2.3. 처음 토질을 보존해야 함
9.4.3. 생명체들의 종을 보존해야 함
9.4.3.1. 바다의 생명체들을 종으로 보존해야 함
9.4.3.2. 공중의 새들을 보존함
9.4.3.3. 땅의 모든 동물들을 보존해야 함제5절 다스림
9.5.1. 정의
9.5.1.1. 창조주가 세운 법칙대로 움직이게 역사하심
9.5.1.2. 합리적인 피조물들의 자유의지의 결정과 행동을 막지 않으심
9.5.1.3. 허용의 작정
9.5.1.4. 다스림의 목적
9.5.2. 일반섭리
9.5.3. 특별섭리
9.5.3.1. 창조경륜을 이루시기로 정하심
9.5.3.2. 특별섭리는 범죄한 백성을 돌이킴을 목표
9.5.3.3. 복음전파를 막는 세력들
9.5.3.4. 복음전파와 적그리스도 세력들의 충돌
9.5.3.5. 기적들의 역할
9.5.3.6. 그리스도인들의 직임
9.5.4. 생명체들을 다스림은 인류 종족의 책무
9.5.4.1. 다스림은 모든 생명체의 종들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가도록 보살핌이다
9.5.4.2. 종들의 자람을 보장해야 한다
9.5.4.3. 생명체들의 생존환경을 허물면 안 된다
9.5.4.4. 멸종 상태의 생명체들을 복원하여 다시 번성하도록 하는 것이 사람의 책임이다
9.5.4.5. 허물었던 지형과 산들과 언덕들과 토질을 회복해야 한다성경 색인구약신약라틴어와 다른 언어 용어 색인서철원 소개서철원 교수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출생하였고, 서울대 철학과 (B.A.)와 동 대학원 (M.A.)을 마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 후 군목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변증학으로 석사 (Th.M.),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신학박사 (Dr. Theol.) 학위를 받았으며, 학위논문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중보직 (The Creation-Mediatorship of Jesus Christ)〉은 20세기 100대 신학저술 모음인 Theologicum 에 수록되었다. 귀국 후 개혁신학연구원교수, 총신대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한영신학대학교 (현재 서울 한영대학교)의 석좌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 저술로는 《교의신학》(전 7권), 《교리사》, 《복음과 율법의 관계》(일어로 번역됨), 《성령신학》, 《하나님의 구속경륜》(일어로 번역됨), 《신앙과 학문》, 《복음적 설교》, 《하나님의 나라》, 《종교다원주의》, 《문화명령》, 《창조신앙》, 《기독교문화관》 등을 출간하였다.
설교집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심》, 《복음의 개요》, 《복음의 권세》, 《성령의 사역》,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등이 있고, 출간된 주석서들은 《창세기 주석》(전 4권), 《갈라디아서》(1판), 《에베소서》 등이 있으며, 계속 주석 중이다.

이창모 2022-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