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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경배와찬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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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스데반의 설교(2)/요셉의 하나님* 본문 : 사도행전 7:9-16*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2. 15.
 

이창모 2024-12-15 16:10:58 175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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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스데반의 설교(1)/아브라함의 하나님* 본문 : 사도행전 7:81-8*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2. 8.
 

이창모 2024-12-08 13:40:39 358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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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하나님의 전사 스데반* 본문 : 사도행전 6:8-15*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2. 1.
 

이창모 2024-12-01 16:02:58 389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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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초대교회, 자신을 이기다!* 본문 : 사도행전 6:1-7*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1. 24.
 

이창모 2024-11-24 16:30:05 488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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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여호와를 즐거이 부를찌어다!* 본문 : 시편 100:1-5*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1. 17.
 

이창모 2024-11-17 16:35:07 431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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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십자가, 언약의 피* 본문 : 마가복음 14:22-24*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1. 10.

이창모 2024-11-10 16:17:09 523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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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초대교회, 세상을 이기다!* 본문 : 사도행전 5:33-42* 설교 : 이창모 목사* 날짜 : 2024. 11. 3.
 

이창모 2024-11-03 15:58:46 624 더보기
신학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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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모 목사의 성경 오역(誤譯), 오석(誤釋) 바로잡기(30)글을 시작하며예수님이 말씀하신 “악한 농부의 비유”는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다(마21:33-46; 막12:1-12; 눅20:9-19).그런데 문제는 이 비유의 내용 중에 막12:8(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의 진술이 마21:39(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과 눅20:15(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의 진술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마21:39과 눅20:15에서는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어 쫓아 포도원 밖에서 죽였는데 반해, 막12:8에서는 농부들이 포도원 안에서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여서 포도원 밖에 내던진 것으로 되어 있다. 이를 두고 상당수의 학자들은 막12:8은 마가가 원래의 전승 그대로 기록한 것이고,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도성 밖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신 것을 알고, 그것을 반영해서 마가복음의 본문을 수정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이런 이해는 대단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는 자칫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흠집을 내는 이해일 수 있기 때문이다.생각해 보라! 만약 이들 학자들의 말이 옳다면,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도성 밖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신 것을 알았는데 마가는 그것을 몰랐다는 말이 되며, 또 성경을 기록할 때, 성령이 마태와 누가에게 감동한 것과 다르게 마가에게 감동했다는 말이 된다. 더구나 마가복음이 원형이라면,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비유에서 아들이 포도원 안에서 죽었다고 말씀하신 꼴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이런 이해는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성경관에 심각한 상처를 내어 성경의 무오성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한 요인이 된다.다시 말하지만,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서로 모순이 없다. 단지 성경의 본문들이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것은, 필사자들의 실수와 인간의 무지에서 오는 오해일 뿐이다. 그렇다면 막12:8이 마21:39과 눅20:15과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뭔가 모순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번역 성경들의 오역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번역 성경이 막12:8의 헬라어 원문을 바르게 번역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이다.막12:8의 바른 번역은 무엇인가?“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막12:8)위 본문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평행본문 마21:39(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과 눅20:15(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과 상이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막12:8에서는 아들을 포도원 안에서 죽여서 시신을 포도원 밖으로 내던진 것에 반해서, 병행 본문들은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쫓아내고 난 뒤에 죽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런 차이는 일부 학자들의 이해대로 마태와 누가가 막12:8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번역 성경들이 막12:8의 원문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므로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로 오역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필자가 검토한 모든 번역 성경이 이런 실수를 범했다. 아래 소개한 몇몇 번역 성경들을 보라. 하나같이 오역했다.*공동번역: 그를 잡아 죽이고 포도원 밖으로 내어던졌다.*새 번역: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죽이고, 포도원 바깥에다가 내던졌다.*현대인의 성경: 그를 잡아 죽인 다음 포도원 밖에 내어버렸다.*NIV: So they took him and killed him, and threw him out of the vineyard.*KJV: And they took him, and killed him, and cast him out of the vineyard.*NASB: They took him, and killed him and threw him out of the vineyard.막12:8의 오역은 번역자들이 막12:8에서 “내던졌느니라”로 번역된 동사 “ἐξέβαλον”(엑세발론)의 특징을 놓쳤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헬라어 “ἐξέβαλον”(엑세발론)의 원형 “ἐκβάλλω”(에크발로)는 “쫓아내다, 몰아내다” 등의 의미를 가진 타동사로서, “~로부터, ~에서, ~로” 등의 의미를 가진 전치사 “ἐκ”(에크)와 “던지다”(throw)의 의미를 가진 동사 “βάλλω”(발로)의 합성어로, 폭력적이고 강제적으로 “쫓아내다, 몰아내다”(drive out, expel lit. throw out)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그런데 무엇보다도 동사 “ἐκβάλλω”(에크발로)의 중요한 특징은 이 동사는 시체와 같은 무생물을 목적어로 취하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체만을 목적어로 취한다는 것이다(번역자들이 놓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에서도 예외 없이 “ἐκβάλλω”(에크발로)는 살아있는 생명체만을 목적어 취하고 있다. 마가복음에서 예를 두 가지 소개하면, 막5:40(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ἐκβαλὼν/에크발론/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막11:15(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ἐκβάλλειν/에크발레인/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이다.따라서 막12:8의 “ἐξέβαλον”(엑세발론)은 “내던졌느니라”보다는 막11:15에서처럼 “내쫓았느니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 왜냐하면 “내던졌느니라”는 시체 등 무생물의 어떤 물체를 내던진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는 정교하지 못한 번역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동사 “ἐξέβαλον”(엑세발론)은 반드시 살아있는 생명체를 목적어로 취하므로, 농부들이 포도원 밖으로 내던진(내쫓은) 것은 죽은 아들의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라는 말이다.포도원 농부들이 포도원 밖으로 내어던진 것은 그들이 죽인 아들의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아들이라는 것은 “죽여”로 번역된 “ἀπέκτειναν”(아펙테이난)의 목적어와 “내던졌느니라”로 번역된 “ἐξέβαλον”(엑세발론)의 목적어가 “αὐτὸν”(아우톤/him)으로 동일하다는 것에서도 입증이 된다. 만약 살아있는 아들을 죽여서 그 시체를 내어던졌다면, “죽여”(ἀπέκτειναν/아펙테이난)의 목적어는 살해당하기 전의 살아있는 아들이므로 “αὐτὸν”(아우톤/him)이 당연하지만, “내던졌느니라”(ἐξέβαλον/엑세발론)의 목적어는 죽은 아들의 시체를 내던진 것이므로, 바로 앞에서 살아있는 대상에 사용한 목적어 “αὐτὸν”(아우톤/him)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대단히 어색할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본문에서 “내던졌느니라”의 목적어가 “죽여”의 목적어와 동일하게 “αὐτὸν”(아우톤/him)이 사용된 것은 “내던졌느니라”의 목적어 “αὐτὸν”(아우톤/him)이 “죽여”의 목적어 “αὐτὸν”(아우톤/him)과 동일하게 살아있는 아들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가 오역이라는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도성 밖으로 끌려가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그의 시신이 예루살렘 도성 밖에 내던져지지 않고,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무덤에 장사되었기 때문이며, 이를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미리 아셨고, 예수의 죽으심을 직, 간접적으로 목격한 마가도 알고 있었으므로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거나, 마가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막12:8의 헬라어 원문의 의미는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가 결코 아니다.그렇다면 막12:8의 헬라어 원문의 바른 의미는 무엇인가? 앞의 설명을 염두에 두고, 막12:8(καὶ λαβόντες ἀπέκτειναν αὐτὸν καὶ ἐξέβαλον αὐτὸν ἔξω τοῦ ἀμπελῶνος/카이 라본테스 아펙테이난 아우톤 카이 엑세발론 아우톤 엑소 투 암펠로노스)의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그를 잡아서 죽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포도원 밖으로 내쫓았다”가 될 것이다.여기서 “그리고”로 번역된 “καὶ”(카이)는 앞의 사건과 시간적으로 긴밀하게 연속될 때도 사용하지만, 시간의 연속과 상관없이 앞의 사건과 뒤의 사건이 내용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하는 접속사이다. 본문의 첫 번째 “καὶ”(카이)는 전자의 의미이며, 두 번째 “καὶ”(카이)는 후자의 의미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막12:8을 다시 설명하면, ‘포도원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잡아 죽였는데, 그들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서 죽였다’가 될 것이다.그런데 막12:8이 다른 병행본문들과는 달리 포도원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잡아 죽였다는 것이 문두에 있는 까닭은 마가(또는 비유를 말씀하시는 예수님)가 아들의 내쫓김보다 그 아들의 죽음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죽였다”(λαβόντες ἀπέκτειναν αὐτὸν/라본테스 아펙테이난 아우톤)를 도치해서, “그를 포도원 밖으로 내쫓았다”(ἐξέβαλον αὐτὸν ἔξω τοῦ ἀμπελῶνος/)보다 먼저 언급했기 때문이다.따라서 막12:8(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의 “καὶ λαβόντες ἀπέκτειναν αὐτὸν καὶ ἐξέβαλον αὐτὸν ἔξω τοῦ ἀμπελῶνος”(카이 라본테스 아페크테이난 아우톤 카이 엑세발론 아우톤 엑소 투 암펠로노스)과 마21:39(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의 “καὶ λαβόντες αὐτὸν ἐξέβαλον ἔξω τοῦ ἀμπελῶνος καὶ ἀπέκτειναν”(카이 라본테스 아우톤 엑세발론 엑소 투 암펠로노스 카이 아페크테이난)과 눅20:15(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의 “καὶ ἐκβαλόντες αὐτὸν ἔξω τοῦ ἀμπελῶνος ἀπέκτειναν”(카이 에크발론테스 아우톤 엑소 투 암펠로노스 아페크테이난)이 서로 사소한 표현의 차이와 어순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동일한 의미의 문장이다.그럼에도 번역자들이 무생물의 목적격을 취하지 않는 “ἐξέβαλον”(엑세발론) 동사의 특징을 잘 알지 못하고, 막12:8을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로 오역함으로써,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 행위를 하고 만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번역자들의 오역으로 인해서, 성령은 마가에게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죽어서 성 밖으로 내던져진 것처럼 감동시켜 악한 농부의 비유를 기록하게 하고, 마태와 누가에게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내던져진 후에 죽은 것처럼 감동시켜 악한 농부의 비유를 기록하게 한 것처럼 되었다는 말이다.그러므로 성경의 바른 번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번역 성경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만약 번역 성경에서 오역된 말씀을 읽었다면, 오역된 말씀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릴 것이며, 특히 오역이 기독교를 좌우할 만한 중요한 교리에 관한 것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탄은 이런 오역의 틈을 악용해서 이단을 만들어 내며, 많은 사람들은 오역된 말씀에서 생성된 왜곡된 이단 교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이단의 미혹에 빠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오순절주의의 ‘방언기도’, 김성로의 ‘부활복음’, 김요한의 ‘지렁이의 기도’, 옥성호의 ‘야고보를 찾아서’ 등 허접한 그의 책들, 유석근의 ‘알이랑 민족’, 하물며 신천지의 비유 풀이 등까지도 성경의 오역과 직, 간접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신학교 교수, 목회자 등 성경 교사들은 이 부분을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글을 마치며끝으로 번역 성경의 오역의 심각성에 대한 예를 한 가지 더 든다면, 막13:29(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이 또 하나의 실례가 될 것이다. 한글개역과 개역개정은 막13:29의 원문의 “γινώσκετε ὅτι ἐγγύς ἐστιν ἐπὶ θύραις”(기노스케테 호티 엥귀스 에스틴 에피 뒤라이스)를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로 번역했다.그러므로 이 번역에 의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신 것은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이 가리키는 종말의 때를 제자들이 알 수 있다는 의미가 되며, 또한 막13:29 바로 앞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막13:28(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의 ‘무화과나무 비유’도 막13:29과 연계되어 종말의 때에 관한 비유가 되고 만다.28절의 ‘무화과나무 비유’를 보면, 예수님은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들이 제대로 신경만 쓴다면, 종말이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다고 가르치신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단들이 오역된 막13:28-29을 제시하며, 자신들이 종말의 때를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이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13:29의 헬라어 원문에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인자”(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라는 말은 없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는 문 앞에 “가까이 ~ 이른”으로 번역된 “ἐγγύς ἐστιν”(엥구스 에스틴)에서 동사 “ἐστιν”(에스틴) 안에 ‘3인칭 지시대명사’, 또는 ‘3인칭 인칭대명사’가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번역자들은 이 ‘3인칭 대명사’를 친절하게도 “인자”로 의역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미궁의 혼란 속으로 친절하게 인도했다. 이 부분은 “성경의 오역과 오석(31)”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아무튼 번역 성경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오역들이 있으며(영어성경보다 한글성경에 오역이 더 많으며, 한글성경 중에 특히 한글개역과 개역개정에 화가 날 정도로 오역이 더 많다), 특히 중요한 교리를 결정하는 근거가 되는 성경 말씀에 대한 오역도 더러 있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맡은 자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더욱 더 예민하게 성경 본문에 바르게 접근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필자도 번역 성경의 오역과 또 바르게 번역했다 할지라도 잘못 해석한 오석들을 찾아 바로잡는 일에 힘닿는데 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4:16-17)출처 : 바른믿음(http://www.good-faith.net)

교회 사진첩

22년 성탄 축하 공연 모습

관리자S 2022-12-25
4-6월 추천 도서

​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Ⅱ《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Ⅱ》
하나님론 -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사역하나님의 존재방식인 삼위일체 교리와 하나님의 성육신의 교리를 다룬 책이다. 근세신학은 삼위일체 교리를 완전히 제거하였으면, 로마교회와 종교개역교회는 대부분 배도를 완료했다. 서철원 교수는 교회가 구원종교로 남아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이루기 위해서는 삼위일체 교리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교의신학 시리즈는 복음선포를 위한 설교 준비 교과서로 작성되었다. 또한 평신도들도 교의신학을 이해하기 쉽도록 저술하여 성경전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전개하였다. 또 신학적인 난제들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 계시에서 유래한다. 삼위일체가 한 하나님이신 것은 실체가 하나이고 동일하고 분할불가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의 사역의 방식은 아버지는 아들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일하신다. 삼위일체의 신비인 출생과 출래의 비밀을 성경대로 푼다. - 책에서 -
목차머리말제1장 서 론1.1. 정의
1.2. 하나님의 존재
1.2.1.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무한한 영이시다
1.2.2.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1.2.3. 하나님은 구속주이시다
1.2.4.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1.3. 하나님의 속성
1.4. 삼위일체 하나님1.5. 창조경륜
1.6. 만물 창조
1.6.1. 순간 완결된 창조
1.6.2. 전능한 창조주
1.6.3. 창조의 목표
1.6.4. 창조의 부정
1.7. 섭리
제2장 하나님의 존재제1절 하나님의 존재2.1.1. 스스로 계시는 무한한 영
2.1.2. 창조주 하나님2.1.3. 구속주 하나님2.1.4. 삼위일체 하나님제2절 하나님의 존재 증명 불필요2.2.1.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존재자이시다2.2.2.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다
2.2.3. 하나님은 자기의 존재를 계시하셨다
제3장 하나님의 속성제1절 전유적 속성3.1.1. 자존성3.1.2. 단순성과 유일성3.1.3. 무한성
3.1.4. 불변성제2절 유비적 속성3.2.1. 하나님의 생명
3.2.2.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
3.2.2.1. 하나님의 미리 아심3.2.2.2. 하나님의 지혜
3.2.3. 하나님의 의지
3.2.4. 하나님의 사랑
3.2.5. 하나님의 은혜
3.2.5.1.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
3.2.5.2.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3.2.5.3. 하나님의 인자하심
3.2.6. 하나님의 의
3.2.7. 하나님의 주권
3.2.7.1. 절대적 권세
3.2.7.2. 섭리적 권세
3.2.8. 하나님의 거룩
제4장 삼위일체 하나님제1절 삼위일체 교리제2절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왔음제3절 삼위일체는 유일한 실체가 세 위격으로 계심임제4절 위격들의 관계와 구별
4.4.1. 관계에 의한 위격들의 구별
4.4.2. 교부들의 이해
4.4.2.1. 사도적 교부인 이그나치오스
4.4.2.2. 변증가 유스티노스
4.4.2.3. 안디옥의 떼오필로스
4.4.2.4. 에레나이오스
4.4.2.5. 텔툴리아누스4.4.2.6.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4.4.2.7. 오리게네스
4.4.2.8. 아다나시오스
4.4.2.9. 바실레오스
4.4.2.10.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
4.4.2.11. 닛사의 그레고리오스제5절 삼위일체의 사역의 방식
4.5.1. 아다나시오스의 가르침
4.5.2. 힙폴리토스의 견해
4.5.3.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제시
4.5.4. 오리게네스의 강조제6절 각 위격의 사역의 방식
4.6.1. 아버지는 유래 없이 스스로 일하심
4.6.2.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일하심
4.6.3.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일하심
4.6.3.1. 에레나이오스
4.6.3.2. 바실레오스
4.6.3.3.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4.6.3.4. 암브로시우스
4.6.3.5. 루피누스제7절 한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계심의 방식
4.7.1. 하나님은 스스로 계심
4.7.2. 아들의 출생
4.7.2.1. 출생: 아버지에게서 아들의 위격이 나오심
4.7.2.2. 교부들의 이해
4.7.2.2.1. 유스티노스
4.7.2.2.2. 타치아노스
4.7.2.2.3. 아떼나고라스
4.7.2.2.4. 에레나이오스
4.7.2.2.5. 텔툴리아누스
4.7.2.2.6. 힙폴리토스
4.7.2.2.7. 노바치안
4.7.2.2.8.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4.7.2.2.9. 오리게네스
4.7.2.2.10.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드로스
4.7.2.2.11. 아다나시오스
4.7.2.2.12. 힐라리우스
4.7.2.2.13. 바실레오스
4.7.2.2.14.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
4.7.2.2.15. 닛사의 그레고리오스제8절 출생의 성경적 해명
4.8.1. 정의: 아들의 출생=하나님의 자기 객관화 자기 객관화가한 인격을 이룸제9절 성령의 출래에 관한 교부들의 가르침
4.9.1. 출래: 성령의 위격적 존재방식
4.9.2. 교부들의 이해4.9.2.1. 텔툴리아누스
4.9.2.2. 오리게네스
4.9.2.3. 아다나시오스
4.9.2.4. 힐라리우스
4.9.2.5. 바실레오스
4.9.2.6.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
4.9.2.7.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4.9.2.8.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4.9.2.9. 암브로시우스
4.9.2.10. 루피누스
4.9.2.11. 아우구스티누스
4.9.2.12. 아다나시오스 신경
4.9.2.13. 다메섹의 요한네스
4.9.3. 성령의 출래: 하나님의 호흡의 방식
4.9.4. 단일 출래를 교리로, 그러나 이중 출래도 주장제10절 출래의 합당한 해명: 출래=무한한 신성의 현시
4.10.1. 정의: 성령의 출래: 하나님의 충만의 현시 무한한 신성의 현시가 한 인격을 이룸
4.10.2. 무한한 충만은 편재하심임제11절 보혜사 성령
4.11.1. 성령=보혜사
4.11.2. 보혜사 성령의 직임
4.11.3. 보혜사 성령은 믿는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하심
4.11.4. 보혜사는 사람들 안에 믿음을 일으키심
4.11.5. 보혜사 성령의 내주
4.11.6. 보혜사는 구원진리를 가르치심
4.11.7. 보혜사는 믿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지키심
4.11.8. 보혜사는 거룩하게 하심제12절 원보혜사와 다른 보혜사
4.12.1. 원보혜사가 성령을 다른 보혜사로 지목
4.12.2. 그리스도는 구속사역에 근거하여 성령을 청구
4.12.3. 보혜사 성령을 보내심
4.12.4. 보혜사 성령의 본질제13절 위격의 문제
4.13.1. 실체와 위격의 관계
4.13.2. 페리코레시스
4.13.3. 분리 불가한 교제
4.13.4. 신격과 위격들이 분열되지 않음제14절 페리코레시스에 대한 현대적 이해
제5장 삼위 하나님의 사역제1절 창조
5.1.1. 창조주 아버지: 창조 작정
5.1.1.1. 사도신경과 신앙의 규범의 가르침
5.1.1.2. 로마의 클레멘트
5.1.1.3. 이그나치오스
5.1.1.4. 헤르마스
5.1.1.5. 유스티노스
5.1.1.6. 타치아노스
5.1.1.7. 안디옥의 떼오필로스
5.1.1.8. 아떼나고라스
5.1.1.9. 에레나이오스
5.1.1.10. 텔툴리아누스
5.1.1.11. 힙폴리토스
5.1.1.12. 노바치안
5.1.1.13.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5.1.1.14. 오리게네스
5.1.1.15. 아다나시오스
5.1.1.16.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5.1.1.17. 아우구스티누스
5.1.2. 아들 하나님: 직접적 창조주
5.1.2.1. 이그나치오스
5.1.2.2. 유스티노스
5.1.2.3. 타치아노스
5.1.2.4. 떼오필로스
5.1.2.5. 아떼나고라스
5.1.2.6. 에레나이오스
5.1.2.7. 텔툴리아누스
5.1.2.8. 힙폴리토스
5.1.2.9. 노바치안
5.1.2.10.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5.1.2.11. 오리게네스
5.1.2.12. 아다나시오스5.1.2.13. 닛사의 그레고리오스5.1.2.14. 아우구스티누스5.1.3. 성령 하나님: 창조의 완성5.1.3.1. 아떼나고라스5.1.3.2. 에레나이오스5.1.3.3.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5.1.3.4. 아다나시오스5.1.3.5. 바실레오스5.1.3.6. 닛사의 그레고리오스5.1.3.7. 암브로시우스
5.1.3.8. 루피누스제2절 구속과 구속주
5.2.1. 하나님 아버지: 구원 작정으로 구주로 고백됨
5.2.2. 아들 하나님: 구속사역 수행으로 실제 구속주이심
5.2.3. 교부들의 증거
5.2.3.1. 로마의 클레멘트
5.2.3.2. 제 2 클레멘트
5.2.3.3. 바나바스
5.2.3.4. 이그나치오스5.2.3.5. 유스티노스
5.2.3.6. 에레나이오스
5.2.3.7. 힙폴리토스
5.2.3.8. 오리게네스
5.2.3.9.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5.2.3.10. 메또디오스
5.2.3.11. 니카야 신경5.2.3.12. 아다나시오스
5.2.3.13.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5.2.3.14. 닛사의 그레고리오스5.2.3.15. 칼케돈 신경5.2.4. 성령 하나님: 그리스도의 구원적용으로 구원완성
5.2.5. 교부들의 이해5.2.5.1. 이그나치오스
5.2.5.2. 에레나이오스
5.2.5.3. 노바치안
5.2.5.4.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5.2.5.5. 오리게네스
5.2.5.6. 아다나시오스
5.2.5.7. 예루살렘의 퀴릴로스
5.2.5.8. 바실레오스
5.2.5.9. 빅토리누스제6장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는 근세신학제1절 슐라이어마허6.1.1. 칸트의 인식론 도식으로 신학을 완전히 바꿈6.1.2. 신=순전한 의존감정을 발음하는 것6.1.3. 삼위일체 교리의 새로운 논의6.1.3.1. 삼위일체는 전적 의존감정이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 있는 것
6.1.3.2. 슐라이어마허는 의존감정을 영원화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만들었다고 주장
6.1.3.3. 슐라이어마허의 전통적 삼위일체 교리 비판
6.1.3.4. 삼위일체 교리는 이방 다신교가 그리스도교에 들어와서 형성된 것이라고 함
6.1.3.5. 삼위일체 교리를 변형해야 한다고 함6.1.4.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는가?6.1.5. 성령=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공통정신제2절 칼 발트
6.2.1. 하나님은 유일한 신적 존재
6.2.2. 세 위격은 세 존재방식6.2.3. 삼위일체=계시의 세 계기로서 하나님의 존재방식6.2.4. 하나님의 존재: 행동과 사건
6.2.5. 하나님의 존재: 행동과 사역들 안에
6.2.6. 하나님의 존재: 계시의 행동6.2.7. 하나님의 신성: 행동하는 사건6.2.8. 하나님의 존재=생명, 자유로운 행동, 자유로운 사건6.2.9. 하나님의 존재=자기의 결정
6.2.10. 행동과 결정 위에 신의 본질 내로 소급할 계기 없음6.2.11. 교제를 마련하심=그의 행동, 신의 본질임
6.2.12. 하나님만이 인격: 인간 예수만이 인격6.2.13. 유일한 인격적 하나님
6.2.14. 하나님의 존재의 자리: 예수 그리스도 안6.2.15. 하나님=예수 그리스도
6.2.16. 예수 그리스도=유일한 하나님
6.2.17. 선포: 예수 그리스도만=현존하시는 하나님
6.2.18.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철저히 회개한 죄인
6.2.19. 결론: 인간 예수 그리스도=유일한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이 없음제3절 폴 틸리히6.3.1. 신은 존재자체6.3.2. 신은 사람의 궁극적 관심사를 표현하는 것6.3.3. 신은 존재자체이고 존재의 기반이다
6.3.4. 존재자체가 삼위일체적 원리이다6.3.5. 틸리히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 논의로 창조주 하나님을 없애고 존재자체를 신으로 만들었다제4절 칼 라아너
6.4.1. 하이데거의 철학으로 신학을 완전 변화시킴
6.4.2. 신=존재자체, 거룩한 신비
6.4.3. 삼위일체=존재의 통보 도식제5절 위르겐 몰트만
6.5.1. 삼위일체: 십자가상의 고통의 사건
6.5.2. 삼위일체론의 근거는 신론을 그리스도인의 자기의식으로 바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함
6.5.3. 삼위일체를 십자가상의 고통의 교류의 사건으로 전개
6.5.4. 사건 안에서 기도함
6.5.5. 사랑의 사건
6.5.6. 삼위일체: 하늘의 원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나온 종말론적 사건
제7장 하나님의 창조경륜제1절 경륜과 작정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
7.1.1. 작정에 대한 전통적인 세 구분
7.1.2. 일반적 작정과 특별 작정제2절 경륜과 작정에 대한 바른 성찰
7.2.1. 작정=하실 일을 미리 정하심제3절 작정과 경륜에 대한 성경적 근거
7.3.1. 하나님의 뜻을 작정으로 표현한 성경본문들
7.3.2. 경륜을 직접 표현한 성경본문
7.3.3. 예정으로 작정을 표현한 성경본문들
7.3.4. 작정을 직접 표현한 성경본문
7.3.5. 경영과 도모, 모략으로 작정을 표현한 성경본문들
7.3.6. 택하심으로 작정을 표현한 성경본문들
7.3.7. 인봉, 인봉한 책, 책으로 하나님의 작정을 표현한 성경본문들
7.3.8.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의 작정을 표현한 성경본문들제4절 창조경륜
7.4.1. 창조경륜 정의
7.4.2. 창조경륜을 집행하심: 선악과계명으로 언약을 맺으심
7.4.3. 반역이 일어남
7.4.4. 반역한 백성을 구원하기로 정하심
7.4.5. 창조경륜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
7.4.5.1. 창조경륜의 확실한 성취
7.4.5.2.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백성으로 삼으심은 창조경륜의 성취를 위한 준비
7.4.5.3. 시내산 언약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심은 창조경륜의 성취를 위한 준비임
7.4.5.4. 새 언약의 목표가 창조경륜의 성취를 위한 것임을 밝힘임
7.4.5.5. 그리스도의 피로 사람들을 구속함은 창조경륜의 성취임제5절 하나님의 작정들
7.5.1. 창조 작정
7.5.1.1. 물리적 세계를 언약백성의 거소로 창조하기로 하심
7.5.1.2. 영적 세계를 창조하시어 하나님과 언약백성을 섬기도록 하심
7.5.1.3. 백성으로 창조를 탐구하여 영원히 창조주를 영화롭게 하도록 작정하심
7.5.1.4. 영원세계에서도 창조탐구
7.5.2. 역사진행 작정7.5.3. 구원 작정
7.5.3.1. 하나님이 대신 죗값을 갚으심이 예정됨
7.5.4. 선택과 유기의 작정
7.5.4.1. 죄 때문에 창조경륜을 이루심에 선택과 유기의 작정을 세우심
7.5.4.2.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이 이루어짐
7.5.4.3. 예정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의 작정임
7.5.4.4. 예정은 삼위의 사역
7.5.4.5. 선택과 유기의 작정은 확고하고 불변
7.5.4.6. 택자들의 수
7.5.4.7. 유기 작정제6절 선택 교리의 논의
7.6.1.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
7.6.1.1. 작정의 불변성
7.6.1.2. 사람의 범죄는 신적 허락에 의해서
7.6.1.3.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도 하나님의 뜻 없이 되지 않음
7.6.1.4. 모든 인류의 구원은 예정된 자들만 구원되는 것을 뜻함
7.6.1.5. 하나님은 허락으로 이루시거나 실제로 자신이 이루심
7.6.1.6.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을 다 이루심
7.6.1.7. 예정은 은혜로 이루어짐
7.6.1.8. 지성적 존재의 타락을 예지하셔도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빼앗지 않으심
7.6.1.9.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룸
7.6.2.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개
7.6.2.1. 예정은 지성적 존재들을 영생으로 배정하는 것
7.6.2.2. 예정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집행함임
7.6.2.3. 예정에는 선택과 유기가 있음
7.6.2.4. 예정: 영생으로 배정 유기: 영생에서 탈락 허용
7.6.2.5. 예정: 영광의 원인 유기: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음임
7.6.2.6. 유기는 자유의지 박탈 아님
7.6.2.7. 조건 없는 선택
7.6.2.8. 예정은 공로와 상관없음
7.6.2.9. 예정은 확실함
7.6.2.10. 예정된 자들의 수: 확정적
7.6.3. 칼빈의 가르침
7.6.3.1. 자유의지로 공로 이룰 수 없음
7.6.3.2. 죄로 자유 박탈됨: 의 추구 못함
7.6.3.2.1. 자유의지 주창자: 이성의 지도를 받아 의지가 선행을 할 수 있다고 주장
7.6.3.2.2. 교부들도 의지의 자유 인정, 선행 가능성 주장
7.6.3.3. 초자연적 은사들 제거: 자연적 은사들 부패
7.6.3.4. 선의지와 선행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7.6.3.5. 믿음과 선행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7.6.3.6. 본래의 자유의지는 남아 있지 않음
7.6.4. 칼빈의 선택 교리
7.6.4.1. 예정: 구원과 멸망으로 작정임
7.6.4.2. 예정 교리: 성경적 진리
7.6.4.3. 예정 교리 부정 불가
7.6.4.4. 민족적 선택과 개인의 선택의 차이
7.6.4.5. 선택과 공로 예지는 무관함
7.6.4.6. 문제점: 죄와 무관하게 예정 교리 전개
7.6.5. 종교개혁 신경들의 예정 교리 수납
7.6.5.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6.5.2. 영국교회의 39개조
7.6.5.3.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서
7.6.5.4. 제 1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7.6.5.5. 프랑스 신앙고백서7.6.5.6. 네덜란드 신앙고백서
7.6.5.7. 돌트 신경
7.6.5.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제7절 하나님의 합리적, 인격적 존재들을 다루시는 방식을 예정으로 오해함
제8장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심제1절 단번에 완결된 창조
8.1.1. 순간 완결된 창조
8.1.2. 플라톤의 창조론: 영원한 물질에서 현상으로 조성
8.1.3.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단계 창조론
8.1.4. 단번의 완성된 창조제2절 전능한 창조주
8.2.1. 창조를 작정하신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
8.2.2. 창조계획을 구현하신 창조주: 아들 하나님
8.2.3. 아들 하나님의 창조 중보직에 관한 교부들의 가르침
8.2.3.1. 바나바스
8.2.3.2. 이그나치오스
8.2.3.3. 유스티노스
8.2.3.4. 타치아노스
8.2.3.5. 안디옥의 떼오필로스
8.2.3.6. 아떼나고라스
8.2.3.7. 에레나이오스
8.2.3.8. 힙폴리토스
8.2.3.9. 노바치안
8.2.3.10.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8.2.3.11. 오리게네스
8.2.3.12.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드로스
8.2.3.13. 아다나시오스
8.2.3.14. 예루살렘의 퀴릴로스
8.2.3.15. 암브로시우스
8.2.3.16. 루피누스
8.2.3.17. 아우구스티누스
8.2.4. 창조를 장식하고 완성한 창조주: 성령 하나님
8.2.5. 창조 진행을 마감하시는 창조주: 창조 중보자제3절 창조의 방식
8.3.1. 하나님은 그의 의지의 역사로 창조를 이루심
8.3.2. 하나님은 무에서 만물을 말씀으로만 불러내심
8.3.3. 하나님은 단번에 완결된 사물들을 만드심
8.3.4. 창조의 목표: 창조경륜…
8.3.4.1. 하나님은 그의 손의 일을 누리기를 기뻐하심
8.3.4.2. 창조주를 찬송하는 백성으로 사람을 창조하심
8.3.4.3.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게 하려고 광대무변한 우주를 창조하심제4절 하늘을 창조하심
8.4.1. 하늘을 창조 첫 순간에 다 창조하심
8.4.2. 영원물질에서 만물이 이루어졌다는 가설
8.4.3. 유출에 의한 창조는 불가함
8.4.4. 넓이와 길이의 문제
8.4.5. 하늘의 별자리들을 은하계를 중심으로 배치하심
8.4.6. 우리의 은하계에 태양계를, 그 중심에 지구를 두셨다
8.4.7. 태양계의 배치
8.4.8. 시간을 창조하심
8.4.9. 빛을 창조하심
8.4.10. 별들의 직임제5절 땅을 창조하심
8.5.1. 땅을 특별한 자리로 창조하심
8.5.2. 시간 과정 도입
8.5.3. 궁창을 만드심
8.5.4. 풀과 나무들을 창조하심
8.5.5. 해와 달과 행성들을 지구 둘레에 배정하심
8.5.6. 물과 공기에 사는 생명체들을 창조하심
8.5.7. 땅 위에 사는 짐승들을 창조하심제6절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심
8.6.1. 창조경륜
8.6.2. 하나님의 형상 곧 인격체로 사람을 창조하심
8.6.3. 땅의 티끌로 몸을 창조
8.6.4. 영혼을 도덕적, 지성적 성품을 가진 영적 실체로 창조하심
8.6.5. 백성 삼는 언약을 체결
8.6.6.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심제7절 영적 세계를 창조하심
8.7.1. 천사들을 창조하심: 물리적 세계와 동시에 창조됨
8.7.2. 천사의 존재
8.7.3. 천사들의 지식
8.7.4. 천사들의 직임
8.7.4.1. 천사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창조됨
8.7.4.2. 하나님은 그의 작정과 경륜을 천사들을 통해서 집행하심
8.7.4.3. 천사는 하나님의 계시와 명령을 전달
8.7.4.4. 천사들은 언약백성을 지킴
8.7.5. 천사들의 분류
8.7.5.1. 보좌들, 주관들, 정사들, 권세들
8.7.5.2. 스랍들, 가브리엘, 미가엘제8절 천사들의 범죄
8.8.1. 사탄과 그 무리가 범죄함
8.8.2. 사탄의 범죄의 시기
8.8.3. 사탄의 범죄: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고 반역함
8.8.4. 타락한 천사들의 수를 사람으로 채움의 문제
8.8.4.1. 타락한 천사들의 수를 사람들 중 택한 자들로 채운다는 주장
8.8.4.2. 타락한 천사들의 수를 사람들로 채움
8.8.4.3. 인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심
8.8.5. 천사 창조를 부정하는 근세신학제9절 창조를 부정하는 근세신학
8.9.1. 슐라이어마허
8.9.1.1.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하는 진술은 순전한 의존성을 표현한다는 것임
8.9.1.2. 현상대로 있는 보존을 창조라고 함
8.9.1.3. 보존은 종을 따라 새로운 개물이 나타나는 것임
8.9.1.4. 개별존재들이 새롭게 발생하는 것은 반복적인 신의 활동임
8.9.1.5. 개별사물들이 교대로 나타난 것을 보존 곧 창조로 봄
8.9.1.6. 세계를 창조된 것으로 보는 것은 전적 의존감정의 표현
8.9.1.7. 보존에서 새로운 개물들이 나오는 것이 창조활동
8.9.1.8. 성경의 시작에 창조론을 넣은 것은 지적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함
8.9.1.9. 창조는 경건한 자기의식에 모순된다는 것
8.9.1.10. 창세기의 창조설화는 역사적이 아니라는 것
8.9.1.11. 창조론 논의는 교의학의 업무가 아니라고 함
8.9.2. 칼 발트
8.9.2.1. 창조: 의존성의 관계개념
8.9.2.2. 성경의 창조 문장: 신앙 문장
8.9.2.3. 창조: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말하는 것
8.9.2.4. 창조 기사: 신앙 문장
8.9.2.5. 성경의 창조 역사=비사실적 역사 곧 싸가
8.9.2.6. 창조: 은혜언약의 역사를 위한 공간 마련
8.9.2.7. 영원은 과거, 현재, 미래의 통일인 순간
8.9.2.8. 창조주 하나님도 시간적
8.9.2.9. 창조 역사는 환상에서 나온 것인데도 믿음을 요구한다고 함
8.9.2.10. 창조 사건들을 싸가로 말함
8.9.2.11. 낙원은 실재 자리가 아니고 환상에서 기원하였음
8.9.2.12. 선악의 지식 나무 싸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라는 것
8.9.2.13. 남녀 창조: 원인론적 신화
8.9.2.14. 결론: 자존하신 하나님도 없고 무에서의 창조도 없다
8.9.3. 폴 틸리히
8.9.3.1. 창조: 존재가 존재물로 나타남 곧 계속적인 일
8.9.3.2. 결론: 신은 존재자체이고 창조는 존재가 존재물로 구체화됨임
8.9.4. 칼 라아너
8.9.4.1. 창조: 인과적 사건 아님
8.9.4.2. 창조: 존재 통보로 존재자가 늘 나오는 것을 말함
8.9.4.3. 창조: 세계가 신에게 의존해 있음을 말함
제9장 섭 리제1절 섭리의 정의
9.1.1. 섭리의 두 요소: 보존과 통치제2절 섭리의 작정과 목표
9.2.1. 섭리의 작정
9.2.2. 섭리의 목표는 창조경륜을 성취함임
9.2.3. 섭리주제3절 붙드심
9.3.1. 섭리주는 만물을 그 성질과 법칙대로 보존하심
9.3.1.1. 토마스의 보존 개념: 존재를 흘러들어가게 해서 보존함임
9.3.1.2. 존재를 부어넣음이 아니고 만물을 붙드심이라고 해야 함
9.3.2. 만물이 변형되어 다른 종이 되지 않게 붙드심
9.3.3. 만물에게 생명을 주셔서 붙드심
9.3.4. 창조주는 만물의 종을 보존하심제4절 통치권의 위임과 보존을 위한 사람의 책임
9.4.1. 통치권의 위임은 창조물의 보존의 책임을 지는 것임
9.4.2. 땅을 다스림은 땅의 형질과 형체와 토질을 보존함임
9.4.2.1. 땅의 형체를 변형하여 완전한 파괴를 자행함은 불가함
9.4.2.2. 토질을 완전히 파괴함은 불가함
9.4.2.3. 처음 토질을 보존해야 함
9.4.3. 생명체들의 종을 보존해야 함
9.4.3.1. 바다의 생명체들을 종으로 보존해야 함
9.4.3.2. 공중의 새들을 보존함
9.4.3.3. 땅의 모든 동물들을 보존해야 함제5절 다스림
9.5.1. 정의
9.5.1.1. 창조주가 세운 법칙대로 움직이게 역사하심
9.5.1.2. 합리적인 피조물들의 자유의지의 결정과 행동을 막지 않으심
9.5.1.3. 허용의 작정
9.5.1.4. 다스림의 목적
9.5.2. 일반섭리
9.5.3. 특별섭리
9.5.3.1. 창조경륜을 이루시기로 정하심
9.5.3.2. 특별섭리는 범죄한 백성을 돌이킴을 목표
9.5.3.3. 복음전파를 막는 세력들
9.5.3.4. 복음전파와 적그리스도 세력들의 충돌
9.5.3.5. 기적들의 역할
9.5.3.6. 그리스도인들의 직임
9.5.4. 생명체들을 다스림은 인류 종족의 책무
9.5.4.1. 다스림은 모든 생명체의 종들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가도록 보살핌이다
9.5.4.2. 종들의 자람을 보장해야 한다
9.5.4.3. 생명체들의 생존환경을 허물면 안 된다
9.5.4.4. 멸종 상태의 생명체들을 복원하여 다시 번성하도록 하는 것이 사람의 책임이다
9.5.4.5. 허물었던 지형과 산들과 언덕들과 토질을 회복해야 한다성경 색인구약신약라틴어와 다른 언어 용어 색인서철원 소개서철원 교수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출생하였고, 서울대 철학과 (B.A.)와 동 대학원 (M.A.)을 마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 후 군목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변증학으로 석사 (Th.M.),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신학박사 (Dr. Theol.) 학위를 받았으며, 학위논문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중보직 (The Creation-Mediatorship of Jesus Christ)〉은 20세기 100대 신학저술 모음인 Theologicum 에 수록되었다. 귀국 후 개혁신학연구원교수, 총신대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한영신학대학교 (현재 서울 한영대학교)의 석좌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 저술로는 《교의신학》(전 7권), 《교리사》, 《복음과 율법의 관계》(일어로 번역됨), 《성령신학》, 《하나님의 구속경륜》(일어로 번역됨), 《신앙과 학문》, 《복음적 설교》, 《하나님의 나라》, 《종교다원주의》, 《문화명령》, 《창조신앙》, 《기독교문화관》 등을 출간하였다.
설교집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심》, 《복음의 개요》, 《복음의 권세》, 《성령의 사역》,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등이 있고, 출간된 주석서들은 《창세기 주석》(전 4권), 《갈라디아서》(1판), 《에베소서》 등이 있으며, 계속 주석 중이다.

이창모 202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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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모 2021-11-17